철도×예술×전시, 〈철도인〉이 나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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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도신문)=3일, 평소보다 꽤 이른 시간에 KTX를 타고 대전으로 향했다. 철도인과 철도동호인의 삶을 다룬 전시가 대전에서 이뤄진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문화예술계에서 철도나 철도동호활동은 다른 웹컬처 문화들과 마찬가지로 아예 문화예술에서 제외되어 있던 영역이었다. 그런 소재를 제대로 다룬다는 소식에 반드시 방문을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전시에서도 올해 한 해 동안 지속적으로 밀어온 사업이기도 해서 그 주목도를 더했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올해 정년 퇴임을 맞는 강병규 전 황간역 역장(본지 1234호 소개)을 포함해 김종섭 정비사(대전철도차량정비단)도 주요 전시자로 나섰다. 그동안 철도현장에서 철도인과 철도동호인들은 다소 배타적인 구성원들이었다. 철도동호인들은 철도에 지나친 관심을 보이는 존재들이었고, 그런 이들을 반갑게 마주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두 개의 겹쳐지는 흐름들이 만나 한 자리에 어울렸다.

    공간에 맞는 전시 배치 인상적

    전시는 다섯 명의 ‘철도인’들이 자신들이 쌓아온 철도 활동을 공개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원래 교회였던 자리를 사들여 새롭게 만든 전시공간인 ‘구석으로부터’ 공간이 전면적으로 활용되었다.

    우선 2층으로 올라와 있는 대예배당에는 가장 큰 부피를 가진 서소형 작가의 작품이 자리잡고 있다. 서소형 작가는 예배당을 다시 성스러운 공간으로 만들고자 하는 의사인 듯 금속 파이프들을 파이프 오르간 형태로 엮어내 다시 하나의 공간으로 구성했다. 그리고 파이프오르간 아래에서는 금속오르간을 살아숨쉬게 하는 스피커들이 철도 운행 소리들들 차례차례 재생한다. 작가는 작가와의 대화에서 “파이프오르간이 공기의 압력을 통해 진동을 내듯이, 철도차량도 브레이크를 공기의 압력을 활용해 잡는다고 들었다. 아울러 대전역에 자리잡았던 증기기관차의 소리를 포함해 철도와 소리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한 작가는 평소부터 ‘인식에서 멀어진 위치에 있거나 그 존재감이 드러나지는 않지만, 항상 존재했던 소리들을 모순적 환경에 배치해, 관객에게 공간을 철저히 탐구하[고] … 다수의 청각적 공간과 연결되어 고정관념, 소수자의 위치, 부조리, 해체, 내면 의식에 대한 물음을 건드리’기 위해 작품을 구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적과 같이 철도 전시와 파이프오르간은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지만, 공기제동을 풀고 맺는 행위와 파이프 오르간에 공기가 공급되는 행위 모두 새로운 생성을 불러일으킨다. 그런 의미에서 모순적 환경처럼 보이던 것을 하나로 통합시키는데 있어서 서 작가의 작품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대예배당을 지나 강단으로 올라가면 강당 한 면을 채우는 인쇄물이 하나 있다. 철도인이나 철도동호인 중 시각표를 좋아하는 당사자들은 큰 관심을 가질 다이어그램(다이어, 다이아)이다. 2012년의 다이어그램을 담은 이 전시물에는 4시부터 다음날 4시까지 경부선과 경부고속선, 호남고속선 서울~(서)대전 구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일목요연하게 하나의 그림으로 담겼다. 현재의 호남고속선이 개통하기 이전의, 한국철도의 최전성기를 담은 기록인 셈이다. ‘경부고속선과 경부선을 하나의 다이어그램으로 담으면 복잡해서 어쩌나’라는 생각도 잠시, 합쳐진 하나의 기록들은 철도에 이렇게 많은 열차가 오늘도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

    이 다이어그램을 작도한 사람이 철도시각표 동호인인 이영훈씨다. 평소 대전~신탄진 구간을 많이 애용하는 그는 그동안 타고 다닌 열차 탑승 기록을 바탕으로 ‘한국철도 열차이용내역 통계’라는 것을 만들어 세 권의 두툼한 책으로 엮어 내기도 했다. 또한 그가 전시한 연습장에는 일본철도에 대한 자세한 탐구가 담겨있다. 일본철도의 노선도와 역명, 역간 거리를 직접 손으로 베끼면서 공부한 자욱이 절실하게 느껴졌다.

    대예배당 공간을 벗어나 다른 전시공간을 둘러보는 순간, 대예배당 구석에 있는 작은 계단에서 관객이 올라온다. 심상치 않은 느낌이 있다 했더니, 이 곳도 전시공간이었다. 좁다란 계단은 두 사람이 지나가기도 복잡하다. 좁은 계단을 한 층 정도 내려가면 정비복과 기름으로 범벅된 안전모가 눈에 뜨인다. 김종섭 철도정비사의 전시공간이다. 맨 아래에 위치한 지하공간에는 그의 출근 모습이 동영상으로 담겨 있다.

    평소에 하는 일이 매번 들어오고 나가는 객차와 열차를 맡아 확인하는 일인 만큼, 그의 정비복에서는 수많은 철도 차량들을 안정적으로 움직이기 위해 그가 흘렸을 노력이 분명하게 느껴진다. 층계 한편으로는 ‘테이블리프트 작업수칙’이 적혀 있다. ‘지적확인환호응답’이나 ‘휴대전화 사용 금지’, ‘방호장치’ 등 작업현장에서는 당연한 용어고 그저 지나칠 내용이 전시 구성의 일부가 되어 있는 걸 보니, 철도인들이 오늘도 땀흘리는 철도 현장의 문구 하나 또한 새로 발견되어 승객들에게 전달될 수 있는 새로운 이야기라는 느낌을 받았다.

    하야부사역의 비밀이 풀리다

    다시 계단을 올라와 왼쪽에 보면 작은 방이 있다. 이 방에는 다른 방들과 달리 다양한 수집품들이 다수 놓여있다. 무슨 일인지 다시 살펴보니, ‘와카사, 하야부사…’ 어디서 자주 보던 이름들이 나온다. 제대로 확인해 보니 2016년에 방문했었던 와카사 철도의 하야부사역(본지 1256호 소개)과 관련된 역명판들이다. 다시 살펴보니 이 공간은 ‘철도마니아 윤희일’님, 아니 윤희일 경향신문 선임기자의 소장품들을 전시한 공간이다.

    철도 탑승 자체를 좋아한다는 윤희일 기자의 공간 다른 편에는 그동안 쌓아두었던 의문에 대한 해답이 나와 있다. 경부선 지탄역과 하야부사역이 자매결연을 한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왜 자매결연을 했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몰랐었는데, 알고보니 윤희일 기자가 한국철도공사 지탄역의 명예역장으로 활동하던 시절에 맺은 것이었다. 그래서 이 두 역의 ‘자매결연 선언문’의 선언 주체도 ‘하야부사역을 지키는 모임’ 회장과 윤희일 ‘명예역장’이었다. 꽤 오랫동안 머리 속에 두었던 궁금증이 풀렸다.

    한편 이 공간에 철도 차량에서 떼온 것이 확실해 보이는 의자가 있었다. 일본의 경우 철도 차량 부품을 철도회사가 판매하고 수집하는 문화가 있어서 혹시나 구매한 것이 아닌지 윤 기자님에게 물어보니, 자신의 것은 아니고 전시 주최측에서 가져온 것이란다. 그러다 주변의 사람들의 시선이 몰린다. 이 의자가 옛날 새마을호 시대의 좌석이란다. 그 당시에는 차내 흡연이 금지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흡연을 위한 재떨이도 있었다며 기억을 꺼내놓는다. 기자가 좌·우측을 확인해 보니 실제로 재떨이와 탁자가 있었다. 국내 철도 차량 또한 철도동호인에게 판매했더라면 이런 부품들을 전시에서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달랬다.

    이 정도면 많이 본 것 같은데, 아직까지 봐야 할 전시가 두 개나 남았다. 마지막 ‘철도마니아’의 전시는 예상하기 힘든 공간에 위치해 있다.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의 좁은 공간. 보통사람이라면 전시를 하지 않을 공간에 사진들과 A4지로 만든 다양한 모형이 쌓여 있다. 마지막 전시자인 유일한 어린이, 성유현 군의 전시 물품은 그가 사랑하는 전철을 일일이 자신의 손으로 그려낸 모형이다. 언뜻 보면 유치한 것 같지만 그 내용 속에는 진심이 담겨 있다.

    도시철도로 따지면 단 하나의 노선 밖에 없는 대전에 살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가 좋아하는 철도 모형의 범위는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한다. 그가 그려낸 그림 모형에는 1호선 중기 저항부터 1호선 서울교통공사 구형, 용인경전철, 공항철도, SRT, 동해선 전철, 부산지하철 4호선까지… 어느 정도 철도 정보에 익숙해졌을 나도 알기 힘든 것들까지 가득 차 있다. 오른쪽에 있는 철도 사진들도 철도기점을 시점으로 전국의 내노라 하는 관광열차들 앞에서 찍은 사진들 뿐이다. 좁은 공간인 것 같지만 사실은 가장 주어진 공간에 비해 많은 내용을 가득 채운 그의 창작력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그렇다면 마지막 전시가 남았다. 마지막 전시는 강병규 전 역장의 공간이다.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입구에서부터 충주역 구내원, 구미역 역무원, 직지사역, 판교역, 황간역… 다양한 철도역들을 지나다니며 겪은 그의 인생살이가 한 계단마다 기록되어 있다. 다소 가파른 계단 위로 올라가면 먼저 보이는 것은 걸려져 있는 파란 제복과 모자다. 그동안 42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입어온, 그러나 이제는 벗어야 할 철도원의 제복이라 의미가 깊다. 왼쪽으로는 다양한 철도 부품이 놓여 있다. 레일 조각부터 개표기, 수신호기, 호루라기, 명찰, 흰 손장갑까지 꽤 많은 삶을 지탱한 철도역무원의 일상을 여실히 드러낸다.

    안쪽 방에는 황간역 부역장으로 있을 때의 사진과 현재 역무담당원으로 돌아가 있는 강 역장의 사진 두 장이 있고, 그 사이를 수많은 실들이 이어주고 있다. 황간역이라는 공간을 방문해 다시 역장으로 돌아와, 역장을 퇴임하고서도 여전히 자리에 머물러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인데, 벌써 시간이 지나 이렇게 되었다.

    인터뷰 영상을 돌아보고 뒤로 나오려고 하면 창에 글이 새겨져 있다. 2016년 역장 ‘퇴임’을 맞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이다. “(…) 종착역, / 황간역을 시와 그림, 음악이 있는 문화영토로 가꾼 것, 40년 철도원의 가장 큰 보람이었습니다. 마음과 수고를 함께 한 고마운 인연들 있어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 철도원 평생의 사명이자 마지막 긍지였던 시골역장 모자, 이제 저무는 철길 위에 내려놓습니다. / 함께 한 여정 행복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많은 생각을 안겨 주는 글이다. 그 글을 뒤로 하고, 계단을 내려선다.

    〈철도인〉을 시점으로 철도의 문화예술 편입 가속화해야

    철도문화라는 말이 가끔씩 입에 오르내리는 때가 있다. 보통 이 단어는 철도를 일반인에게 확산화하기 위해 철도를 생활화해야 하자는 취지나, 철도 동호인을 대상으로 제작, 판매되는 철도모형이나 기타 철도 굿즈 등을 포장하기 위해 쓰인다. 아직까지 일반인들에게 철도는 그동안 존재했지만, 일상생활에 있어서 필요한 수단·도구 중 하나거나, 이상한 사람들이거나 철도사원 지망생들이 좋아하는 일련의 놀이, 그 양극단의 의식 어디엔가에 위치해 있었다.

    그러나 이번 〈철도인〉 전시는 그러한 편견 없이도 철도를 문화와 접목할 수 있고, 더불어 현재의 문화예술 작업으로도, 씬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굳이 지적하자면, 철도인들과 철도동호인들이 쌓아온 철도문화의 숲은 이외에도 다양하다. 철도모형이야 N게이지나 HO게이지, 레고를 막론하고 이미 전세계적인 동호 네트워크가 구축되어 있다. 철도 차량과 노선들을 사랑해서 캐릭터로 만든 사례도 있으며, 이외에도 다양한 문화콘텐츠가 철도를 기반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철도인들도 업무 가운데 쌓아온 수많은 실적들이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모른다는 것이다.

    〈철도인〉 전시는 사실은 내륙철도의 중점 도시인 대전시를 문화예술화한다는 차원에서 대전시 문화예술 차원에서 움직이는 가운데 이뤄졌다. 기자가 방문한 3일도 오후 4시에 철도와 관련된 퍼포먼스가 이어지는 등 연례행사로 철도를 문화예술과 접목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졌다. 이러한 움직임이 일회성 차원에 그쳐서는 안된다. 내년에도 사이, 잇다의 작업이 계속되길 바란다. 아니, 다른 문화예술 주체들의 움직임도 확산되어서 철도가 문화예술로 시민들 곁에서 존재하는, 보편적인 철도문화의 보급을 내다볼 수 있어야 할 시점이다. /윤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