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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으로 가득한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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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캐슬 제공)

(철도신문)=불치병에 끝까지 맞서는 사람의 이야기, 우리나라에는 많지 않지만 의외로 일본에는 자주 발견할 수 있는 스토리 서사다. 이 서사 흐름은 다계통 위축증을 겪은 키토- 아야(木藤亜也, 1962-1988)님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1리터의 눈물〉(1986; 드라마 2005)을 시점으로 색소선건피증을 겪는 여학생을 바탕으로 한 영화인 〈태양의 노래〉(2006) 등을 통해 계속해서 회자되어 왔다. 그리고 작년 개봉되었던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도 이러한 서사 흐름 상에 서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존의 스토리라인을 이 애니메이션이 그대로 따라가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의 중심 소재가 불치병과의 사투이기는 하지만, 췌장암을 가지게 된 야마우치 사쿠라(山内桜良, Rynn 분)가 사실상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니다. 사쿠라의 마지막 남자친구가 된 시카 하루키(志賀春樹, 타카스기 야히로 분)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전형적인 1인칭 시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쿠라의 이야기를 하루키가 경험하고, 이야기를 나눈 것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는 점이 일반적인 이야기와는 다르다.

(미디어캐슬 제공)

둘째로, 이야기 스토리의 전개방식이 장애나 병을 가진 사람들을 미디어에서 다루는 방식이 아니라, 전형적인 러브스토리다. 병을 가진 사람을 불쌍하게 바라보는 접근을 벗어나, 일반인과 일반인이 그저 사랑하듯이, 그 과정 속에서 한 사람이 병을 가지고 있을 뿐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우리나라에서 병과 관련된 스토리라면 기본적으로 병원에서, 병원복을 입은 사람을 담을 것이다. 하지만 이 스토리에서 사쿠라는 교복을 입고, 일상복을 입고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일본인들이 장애나 병자에 대한 일련의 차별적 시각을 벗었다는 식의 있을 수 없는 주장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스토리가 판매되는 콘텐츠로 나왔고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는 사실 그 자체는 반드시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이야기를 마치고 정리하는 방식도 큰 차이가 있다. 스포일러에 속하는 부분이 있어 자세히 이야기하지는 못하지만, 일반적인 영화의 진행방식과도 큰 차이가 있어서 꽤 놀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방식을 썼기 때문에 이 이야기가 좋다. 이야기를 통해 창작자가 전달하려는 내용이 사쿠라가 병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아닌, 하루키가 사쿠라를 통해 어떻게 변화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당연한 전개이다.

다만 이 이야기의 기본에 깔려 있는 ‘하루키가 사쿠라를 통해서 변화된다’는 전제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고민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루키를 보면서 나는 일반적인 발달장애 당사자들, 일본의 남성들, 히키코모리들, 그리고 한국의 남성들을 다시 겹쳐 생각하게 되었다. 이 영화에서 명목상으로 사쿠라가 주인공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하루키가 주인공이라고 해석할 수 밖에 없는 것은 그들이 변화하고자 노력하고자 하는 의지보다는, 다른 사람을 통해 내가 변화되었으면 좋겠다는, 단순한 소망에 불과하겠지만,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보상심리 때문은 아닐까. 그렇다면 아직까지 이 애니는 현실도피에 불과하다.

(미디어캐슬 제공)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과 만나고자 하는, 특히 여성과 만나고 사귀고자 하는 남성들의 심리를 파고 들고, 여성들도 감동을 가지고 이 영화를 볼 수 있게 스토리 장치가 잘 되어 있어서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질병을 가진 사람이라서 일상 생활을 할 수 없다는 통념을 깬 이 영화같은 작품들을 앞으로 일본 애니메이션계에서 많이 볼 수 있기를 기원한다.

마지막으로 이 글이 영화가 되고, 다시 애니메이션이 되어 나가는 과정 속에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 있다. 그것은 원전 소설이 〈소설가가 되자!〉에 연재되었던 소설, 다시 말해, 우리나라로 치면 단순한 웹소설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 장벽을 뛰어넘고 출간되고, 영화로도 만들어지고, 다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 우리 가운데에 전해졌다. 대중 문화선진국이라는 우리나라에서도 아직까지도 불가능한 일이다. 일본에서 다양한 이야기가 만들어져 가고 있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의 이야기는 소위 양판소나 장르문학이라는 틀에 갖혀 아직까지도 이 꼴이다. 다양성을 사라지게 만든 창작자, 출판사, 미디어 관계자를 포함해 이런 ‘개판같은’ 이야기만 넘치게 만든 ‘한국남자’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독자’들 스스로부터 반성해야 할 시점이다.

한편 15일 이뤄진 영화 개봉을 맞아 미디어캐슬 측은 18일 오후 1시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에서 1차 스페셜 굿즈 상영회를 연다고 밝혔다. 이 상영회에 참가한 관객들에게는 영화 상영 이후 한정판 캘린더와 뱃지를 제공하므로 관심있는 관객들의 참여가 필요할 것 보인다. 기자도 추후 상영회 일정만 맞는다면 참가를 고려해 볼까 싶다. /윤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