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철길생각 과거연재 느리게 흐르는 자연의 시간에 몸을 맞춰 걷는 청산도 느리게 걷기

느리게 흐르는 자연의 시간에 몸을 맞춰 걷는 청산도 느리게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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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삐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삶의 쉼표처럼 휴식이 그리울 때면 슬로우 축제, 느리게 걷기에 눈길이 돌려진다.

걸으면서 사색하고, 걸으면서 굳어진 근육들을 이완시키다 보면 어느새 뭉쳐진 마음근육들도 하나씩 풀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걷기가 이동 수단, 건강을 위한 운동이 아니라 사색이 되고 철학이 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우리에게

프랑스의 사회학자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 예찬』은 걷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해준다.
삶을 방해하는 생각들을 가지치기하는 걷기, 한가로이 느릿느릿 걷는 것의 즐거움, 걷기를 통해 온 몸의 감각이 열리는 경험들,

여행길에서 만나는 뜻밖의 조우 등 길 위에서 탄생하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걷기예찬에 있다.
다행히 우리 주변에는 여러가지 걷기 좋은 길들이 나 있다. 올레길, 둘레길, 구불길, 문학기행길, 역사길… 등등.

▲광주송정역

▲청산도행 배

광주송정역에 내려 주차장방향으로 내려가다 보면 남도기행을 떠날 수 있는 버스들을 만나게 된다. 이름만으로도 설레임을 주는 남도의 명소들로 안내하는 코스가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그 중에서도 섬 하나를 구석구석 걸으면서 테마별로 볼 수 있는 곳이 있으니 완도 청산도 슬로우길이다. 청산도를 많이 찾는 기간이어서인지 완도까지 직행으로 가는 버스노선이 있어 반가웠다. 광주송정역에서 완도까지는 버스로 2시간 남짓. 완도에서 배를 타고 50분정도 달리면 청산도의 도청항에 다다른다. 순환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일일 교통패스를 사서 코스마다 이동하며 둘러볼 수 있게 되어있다. 청산도 슬로우길은 무엇보다 들길, 산길, 바다길 모두를 걸을 수 있는 것이 매력이다.

▲서편제길

▲서편제길에서 본 완도바다

사실 ‘슬로우길’은 별도로 만든 게 아니라 기존 마을 주민들이 오가던 길을 코스로 조성해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올해는 청산도가 아시아 슬로시티로 지정된 지 10년이 되는 해이다. 완도 청산도 슬로우 걷기 축제는 지난 4월 한달 간에 걸쳐 섬 일대에서 펼쳐졌다. 굳이 축제기간이 아니더라도 청산도는 계절별 색채가 있어 어느 때라도 좋다. 총42.195km로 조성된 11개 코스의 슬로우 길은 가벼운 워밍업과 인증샷을 위해 만들어진 1코스 서편제길을 시작으로 사랑길 2코스, 섬 문화와 역사를 보여주는 3코스 고인돌길, 청산 비경중의 비경인 4코스 낭길, 생기 충만한 범바위 체험의 5코스 범바위길, 구들장논과 다랭이 논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찻집이 있고 마을 구석구석 돌담길이 예쁜 6코스, 숨겨진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7코스 명품길, 파도가 연주하는 갯돌의 음악소리를 느낄 수 있는 8코스 해맞이길, 상념을 버리고 걷다 보면 단숨에 완보하는 9,10,11코스가 있다.

▲느린섬 여행학교

1박의 여유가 있다면 슬로길 6코스에 있는 느린섬 여행학교에 묶는 것도 권한다. 2009년에 폐교가 된 청산중학교 동분교를 개조하여 슬로푸드 체험관, 숙박동, 홍보관등을 갖춘 다목적 복합시설로 구성했다.
청산도는 면적 33.28㎢로 하루면 둘러볼 수 있는 작은 섬이다. 하지만 ‘느린 섬’이다. 주변 경관을 보며 걷다 보면 절로 걸음이 느려지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품고 있는 풍경이 빼어난 데다 놓치면 아쉬울 만한 명소들이 곳곳에 있어 제대로 보려면 며칠은 걸린다.

▲범바위앞

▲상서돌담마을

그 중 호랑이가 웅크린 모습을 닮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범바위는 예로부터 기가 세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돌이 많아 물이 잘 고이지 않는 섬의 특성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진 구들장논은 청산도에서만 발견되는 방식으로, 2013년 국가중요농업유산 1호로 선정되며 보존가치를 인정받았다. 상서돌담마을에서는 열악한 자연환경 속에서 지혜를 발휘해 논농사를 지었던 조상들의 지혜를 만날 수 있다. 슬로우길의 마지막인 11코스 끝엔 청송지리해변이 기다리고 있다. 이곳은 잘 알려지지 않은 일몰 명소이기도 하다. 2㎞에 달하는 백사장엔 고운 모래가 깔렸고, 수심도 완만하고 얕아 발을 담그고 산책하기에 더할 나위 없다. 백사장 뒤쪽으론 200년 이상 된 노송 500여 그루가 있어 이곳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일상의 걱정거리는 멀찍이 달아난다. 슬로우길 곳곳엔 1년 뒤에 엽서가 배달되는 ‘느림 우체통’이 마련돼 있어 걸으면서 떠오르는 그리운 이에게 마음을 띄울 수도 있다.

▲해조류박람회 체험장

▲해조류박람회장 야경

청산도 슬로우 축제기간에 완도에서는 국제해조류박람회가 열렸다. 150여개 해조류와 관련된 기업·단체가 참여한 박람회로 해조류의 생태적·식품영양학적 가치, 그리고 미래 산업으로서의 발전 가능성 등 다양한 정보와 기술을 교류하고 수산물과 수산물 가공품을 선보였다. 신비한 해조류의 감동을 선사하는 바다신비관, 과거부터 현재까지 바닷말과 인류의 삶을 조명한 바닷말 웰빙 라이프를 주제로 한 건강인류관, 무한한 해조류자원의 미래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미래자원관, 해조류의 가치와 이해를 위한 해조류이해관, 지구환경지킴이 해조류에 대해 알게 되는 지구환경관 등 테마별 전시관과 바닷말 체험, 해조류 요리교실, 요트체험 등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이 있었다.

▲장보고 동상

▲청해포구 세트장 전경

완도하면 장보고가 빠질 수 없기에 장보고 기념관을 들러 장보고의 흔적을 찾아 역사기행을 해보는 것도 의미있다. 장보고 동상이 세워진 공원에 올라보면 완도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조망이 있다.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제패한다.’ 는 신념으로 청해진을 중심으로 해상활동을 전개하고 바닷길을 개척한 장보고의 기상이 느껴진다. 완도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들을 촬영한 세트장이 청해포구에 있다. 장보고의 일대를 다룬 드라마 ‘해신’ 에서 부터 ’명량’ , ‘주몽’ 등 대다수의 사극이 청해포구의 빼어난 경관을 배경으로 촬영되었다. 사극촬영에 필요한 다양한 세트들이 모여있다 보니 민속촌을 방불케 한다. 특히 청해포구 휴게소의 파전은 현지인들도 즐겨 찾으리만치 맛있다고 한다. 파전에 막걸리로 지친 다리를 쉬어주며 바라보는 완도바다 또한 일품이다.

▲‘바다를 담은 면’ 창업자 문기경 사장

청정해역으로 인정받는 완도이다보니 해산물을 이용한 음식도 다양하다. 완도수목원 오토캠핑장 부근에 위치한 해조건강면 전문점 ‘바다를 품은 면’ 도 이색적이다. 넓게 펼쳐진 잔디밭 위에 자리잡아 들어서는 순간 탁 트인 조망과 바람에 탄성이 절로 난다. 비싸지 않은 가격대의 해조면으로 만든 메뉴들…전복을 담은 크림파스타, 바다를 담은 장터국수,해조비빔밥 등 모든 면 요리가 톳, 미역, 다시마를 원료로 만든 국수로 되어있다. 매장 한 켠에는 해조국수, 컵 면, 각종 해조류,해조류를 이용한 가공 식품들이 정갈하게 전시되어 있어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구경하고 구입할 수 있다. 음식을 기다리는데 바람에 흔들거리는 파라솔 지지대를 고정시키고 고객들의 불편을 일일이 모니터 하는 분이 눈길을 끌었다. 알고 보니 ㈜완도바다식품을 창업하여 매장을 직접 운영하시는 문기경 사장님이셨다. 최초로 밥에 넣어 먹는 톳 앤 다시마를 개발하였고 전통적으로 먹어왔던 음식을 옛 맛 그대로 보존하면서 간편화시켜 대중화하자는 기본취지로 1973년부터 대를 이어 44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완도에서 시작된 바다를 담은 면은 현재 진주와 시흥에 매장이 있고 부산에도 프랜차이즈매장 개설이 진행 중이라고 한다. 작은 거 하나하나까지 세심히 챙기는 창업자의 정성을 보며 완도기업이 세계적으로 성장하길 기대해본다.
“내 다리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내 생각도 흐르기 시작한다”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말이나 “난 홀로 걸을 때만큼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고 충만하게 존재하고 경험하며 제대로 나 다웠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루소의 고백, “앉아 있으면 생각들이 잠든다. 다리가 흔들어주지 않으면 정신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몽테뉴의 이야기를 통해 보더라도 걷기 시작하면 건강 뿐아니라 정신적인 풍요도 얻게 되는 것이다.
여름의 초입이다. 걸어야 할 때다. 걸으며 행복해지고, 걸으며 깊어지기를.